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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물꽁트 | 다이어리와 다이어트
등록일 2001-03-29
조회 2,892

 

안의성(약사)

"에취! 꿈속에서 뭘 먹으면 꼭 감기기운이 있단 말야. 에에취!"

저울에서 내려오며 미나는 재채기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눈뜨기가 무섭게 밤사이 얼마큼 날씬해졌나 저울에 올라 보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몸무게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7시 이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말자고 허기진 속 달래며 일찍 잠들었는데 오죽하면 뷔페식당에서 돌 잔치하는 꿈을 꾸었을까, 쩝쩝...

다른 애들은 자고 나면 0.5Kg은 기본으로 빠진다던데 내 살들은 아무리 꼬집고 비틀어도 내 몸에서 꿈쩍도 안 하는 걸까? TV 프로에 나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이어트? 저절로 빠졌어요' 만족한 웃음 짓는 연예인 모모양은 순 거짓말쟁이!

얼마 전만 해도 미나는 멀대같이 키 큰(혹자는 늘씬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런 기다란 샤프심은 어데 쓸고? 부러지기나 하지... 아담하고 통통한 알토란같은 자신의 모습이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이 시대 이상적 체형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겨울방학이 끝나고 몰라보게 날씬해진 혜진이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키는 늘릴 수 없겠지만 살은 뺄 수 있다는 친구들의 격려 속에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엄마와 함께 에어로빅을 다녔다는 혜진이의 튼튼했던 두 다리는 약간의 살튼 흔적만을 애처로이 남긴 채 가지런한 다듬이 방망이가 되어있었다.

"에어로빅으로 뺀 살은 다시 찌겠지?"

부러움 반, 시샘 반. 옛날의 몽쉘통통 혜진이를 기억하는 미나에게 '루자똥 백작부인'이라는 별명이 불려진 것도 그때쯤이었다. 미나의 우아함에 어울리는 불란서 호칭인줄 알았는데 뭐시라고라... 난쟁이 똥자루 라고라... 부르기 쉽고 어감 좋은 미나공주라는 호칭은 오데로 가고 그런 무서운(?) 말이 도는 거야?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나의 비장한 다이어트 결심은 성당 수련회 때 먼 발치에서 핸섬한 승준오빠를 발견한 후에 이루어졌다. 화성침공마냥 얼굴에 뻥뻥 여드름 자국 가득한 불량감자들과 구별되는 눈빛조차 범상한 우량감자였던 것이다. 가만히 코끝을 간지럽히는 산들바람처럼 차분한 승준오빠를 찜해놓은 여우같은 여자애들도 몇 있었다. 그래! 세상에 태어나 탐해야 하는 것이 있고 이루어야 하는 일이 있지. 승준오빠와 내 그림이 어울리려면 난 살을 빼야해. 살 빼는 일이 별거야? 안 먹으면 그만이지. 나라면 할 수 있어. Just do it!

하지만 쫄쫄 저녁까지 굶다가 늦은 밤 라면 CF의 유혹에 홀딱 넘어가고 다음 날 호빵맨이 되어 후회한들 무엇하리... 아무래도 안되겠어. 다이어트에 목멘 아이들은 요상한 약들도 잘 사먹던데, 그래! 약국에 한번 가보자.

감기약만 가끔 지으러 가다가 간혹 봉사활동 때문에 기웃거리던 약국의 약사님은 동그라미를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통통한 얼굴에 다이어트랑은 별로 안 친해 보였다.

"있잖아요. 조금 부어서 그러는데 약 좀 주세요."

"별로 부석부석해 보이지도 않는데 그 약은 왜 먹으려고?"

"......"

"그 약은 빨래를 억지로 짜내는 거랑 똑같아. 꼭꼭 짜내어 노폐물은 물론 영양분까지 몽 땅 빼는 거야. 계속 억지로 짜내다 보면 신장이 걸레처럼 망가진단다. 함부로 먹으면 큰 일 나."

뭐시라? 그 자그만 알약 하나에 그렇게 깊은 뜻이? 아무리 다이어트가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의무라지만 소중한 내 몸까지 망칠 수는 없지. 그 때였다 약국 문을 배꼼히 열고

"누나 저녁 먹었어? 떡볶이 사다줄까?"

이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니, 승준오빠가 왜 이 시간 이 자리에... 뜨아~ 그럼 이 언니는 미래의 내 시누이... 갑자기 가슴이 차멀미하는 것처럼 울렁거리며 쿵 내려앉았다.

"저... 비타민 C 이거 3천원이죠?"

정신없이 비타민 C를 낚아챈 후 약국을 빠져나와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야 마음이 진정된다. 승준오빠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았다고 우리 엄마보다 미역국 한 그릇 더 먹은 것도 아닐텐데 내가 왜 이러지... 코끝에 땀이 송송, 두 선이 허전한 건 왜 일까? 잠깐, 아까는 뭔가를 들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한 손엔 비타민 C, 또 한 손엔? 오 마이 갓이로구나, 내 다이어리~! S군이라 표현된 승준오빠를 향한 애달픈 심정을 빼곡이 적어놓은 국보급 다이어리를 약국에 두고 온 모양이다. 내가 다이어트약 사러간 걸 누나에게 들었을까? 다이어리라도 펼쳐보면 S군이 누군지는 금방 뽀록날텐데 아이고 내 팔자야... 다이어트(Diet)랑 다이어리(Diary) 때문에 다이(Die)하시겠네...

그날 밤, 미나의 집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건 이모의 다이어트 차를 몰래 먹은 미나가 흔적을 없애고 있을 때였다.

"여보세요? 저는 미나 선배 승준이라고 하는데요, 미나 있습니까?"

갑자기 귓가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사랑은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거구나.

"안녕하세요, 미나공주, 아니 접니다."

"안녕, 누나 약국에 다이어리 놓고 갔지? 금방 뒤쫓아갔는데 없더라. 모의고사 시간표랑 전화번호도 많던데 급한 거 아냐? 내일 미사 끝나고 성당 앞에서 보자."

Yes!! 첫 번째 데이트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성경구절도 생각나고 냉장고 속에 뒹굴던 오이 한 개로 맛사지도 좀 하고, 이마의 여드름도 좀 짜야지. 그리고 침대에서 몸이 늘어붙은 듯 푹 자야겠다.

다음날 아침,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팩째 들고 마시던 미나는 곧바로 화장실도 직행했다. 어젯밤 특별히 먹은 것도 없는데 오늘은 왜 이리 신호가 빨리 오지? 김희선 머리끈 질끈 묶고 이모 T셔츠 슬쩍 입고 언니 신발 몰래 신고 집을 나섰다. 성당이 가까워 올수록 가슴은 두근두근, 다리가 후들후들... 긴장한 탓인지 신부님 말씀 중에도 싸르르 아파 오는 배를 내 손이 약손이려니 쓸어 내렸다. 그때까지도 미나는 평소와 다른 뱃속의 움직임이 변비대왕 이모의 초강력 다이어트 차를 몰래 마셨기 때문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안녕! 오늘 날씨 참 좋다. 우리 자전거라도 타러 갈까?"

승준오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기 전에 뱃속에서 들려오는 이 신호는...

"아? 예, 예. 그래요 오빠, 미안한데 잠깐 저 화장실좀요."

으~ 창피해. 첫 만남부터 웬 화장실타령? 지구야 멈추어다오. 나 정말 뛰어내리고 싶어.

"다이어리가 참 아기자기해. 곰돌이 푸우 스티커보고 네건줄 알았어."

"곰돌이 푸우요?(그건 내 초등학교 시절 별명인데?)"

영화처럼 멋지게 2인용 자전거를 타고 있어야 할 이 순간에 화장실 표지판을 찾고 있다니... 하느님,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왜 그래? 어디 아프니?"

승준오빠는 안절부절못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아니어요, 오빠. 그냥 좀 속이 안 좋아서..."

"실은 전부터 네가 참 귀여워 보였어. 성당 일도 열심이고..."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시방 내 칭찬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윗입술을 깨물은 미나의 얼굴은 분명 웃어야 할텐데 묘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나랑 같이 있는 거 불편하니?"

아니어라, 아니어라, 그게 아니라니까요... 침만 꼴깍. 이 소리도 오빠 귀에 들리는 것 아닐까? 점점 벌개지는 미나의 얼굴을 보던 승준오빠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미안하다. 일부러 보려던 건 아니었는데 네 다이어리의 S군이 혹시 나인 줄 알았어. 역시 내 착각이었구나."

다이어리를 건네며 돌아서는 승준오빠를 보며 미나는 양파 한 자루를 몽땅 벗긴 사람처럼 코끝이 매워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악몽이...

"승준오빠!!"

터벅터벅 힘없이 걷던 오빠가 멈칫 하더니 뒤돌아보았다.

"오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미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저어~ 휴지 좀 주실래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100m 깊이의 동굴보다도 더 뻥뚫린 승준오빠의 멍한 표정을...

첫 번째 데이트의 악몽 후 미나는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진사, 아니 의사에게' 등 약에 관한 표어들의 교훈을 다시 새겨보게 되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건강한 '루자똥'으로 살겠노라고.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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