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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나답게....
등록일 2001-03-29
조회 2,734



내가 나 답게...

김영근(예수회 신부·청소년 새샘터 대표)

논에 심겨져 있는 벼가 생각납니다.

그 벼는 2 - 3월에 씨가 뿌려졌고 4 - 5월에 논으로 옮겨졌습니다. 논으로 옮겨진 어린 벼는 뿌리를 많이 내려 성장하는데 필요한 각종 영양분을 듬뿍 빨아들입니다. 모낼 때 4 - 5포기에서 많으면 6 - 7포기를 심는데 빨아들인 영양분으로 가지치기를 해 어느새 그 넓은 논을 가득 메우지요. 벼는 많은 병충해를 견뎌내야 합니다. 예전과는 달리 요즈음은 농약으로 인해 논이 벼를 튼튼하게 자라게 하는 힘을 잃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의 벼를 가만히 보면 악조건의 환경에서 자라고 있구나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벼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다하기 위해 열심히 거름을 빨아들여 병충해에 저항합니다. 벼는 장마를 견뎌내야합니다. 홍수라도 날 것 같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지경을 꾹 참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립니다. 또 장마가 끝나면 쉽게 번지는 도열병이란 무서운 전염병을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합니다. 그 전염병은 논바닥의 모든 벼 가족들을 몰살시킬 수가 있지요.

벼는 9월의 매우 뜨거운 햇볕을 맞아야합니다. 뜨거운 햇볕아래에 서 있기란 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뜨겁다고 그 햇볕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지요. 그저 거기에 서서 고스란히 태워버릴 것 같은 뜨거운 햇볕을 맞아야합니다. 하지만 그 뜨거운 햇살은 벼가 많은 이삭을 내는데 꼭 필요하지요. 혹시라도 햇볕이 뜨겁지 않다면 다른 병충해가 기승을 부려 이삭을 내는 데 큰 지장을 받지요. 힘든 여름을 지나 가을에 노랗게 물든 들녘을 바라보면, 그리고 탐스럽게 이삭을 내어 고기를 숙이고 있는 벼를 보면 무척 대견스러워 보입니다. 심한 병충해와 가룸 혹은 홍수를 견뎌 그나마 몇 알이라도 맺혀있는 벼를 보면 더욱 대견스럽습니다. 결코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은 때문입니다. 엄청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열매를 키워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옵니다.

오늘의 저를 만든, 저에게는 매우 소중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요즈음도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입시위주의 교육환경 속에서 성장한 저의 고등학교 3학년 말 어느 아주 추운 날이었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이른 아침에 학교를 갔어요. 학교가 눈에 들어올 정도였을 때입니다. 저 앞쪽으로 무엇인가 큰 물체가 길에 놓여있는 것이 보였어요. 몇 발자국 다가가니 그것은 길에 쓰러져 입에 거품까지 물고 있는 어느 노인이었어요. 하지만 그 노인은 저의 눈, 시각에만 들어왔지 머리(이성)를 거쳐 마음까지 다가오지 못했어요. 그런 탓인지 저는 그 노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바로 곁은 지나쳐서 학교을 갔지요. 책을 펴 공부를 시작했고 수업도 시작되어 제 1교시 수업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날 무렵에 제 마음에 갑자기 "아차! 실수했구나."하는 철렁함과 함께 쓰러져있던 그 노인이 떠오르지 않겠어요? 마침 수업 종료의 종이 울렸고 노인이 쓰려져 있던 자리로 뛰쳐나가봤지요. 그 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당연히 그 노인은 없지요. 혹시나 하고 그 노인이 흘렸던 거품, 침의 흔적이라도 찾아볼 양으로 엎드려 살펴보았지만 그 흔적조차 없는 거예요.

바로 그때 텅 비어 있는 길거리를 보면서 눈이 뜨여 제 자신을 볼 수가 있었어요.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저를 말입니다! 터덜터덜 교실로 발걸음을 옮길 때 지난 고등학교 3년이란 세월이 영화 스크린 지나가듯이 휙휙 지나가더군요. 그리고는 "도대체 3년간 무엇을 했던가,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위해 살았던가,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노인조차 돕지 못하는 쭉정이 인간이 되어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등등의 물음이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텅 빈 제 자신은 바로 "자 보아라. 이것이 네 졸업장이다."하며 불쑥 내밀은 쭉정이 졸업장 그것이었습니다!

머리에 든 것은 어느 정도 있는지 모르나 마음은 정말 텅 비어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정면으로 만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민 끝에 인생의 원대한 목표를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람다운 사람은 무엇인가? 내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이 작은 에피소드와 그에 따른 물음은 나에게 참으로 필요한 영양분은 무엇이며 어디서 어떻게 영양분을 섭취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떤 악조건이 내 앞에 놓이더라도 결코 나를 흔들지 못하리라는 강한 다짐으로 이를 악물었습니다. 이런 생각과 다짐은 삶의 여정 속에서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빨아들일 영양분이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됩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기회포착을 하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저에게 매우 중요했던 기회는 1년간의 재수생활과 대학생활, 대학을 마친 후 전공과는 관계없이 약 2년간 어느 종합병원에서의 남자보조간호사 생활이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배워야겠다는 뜻으로 대학에서 교육학을 했고, 병원 응급실은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갔습니다. 그 후 저는 본격적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을 가고 싶어 예수회라고 하는 가톨릭 수도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수도원 들어오기 전까지, 그리고 들어온 후 지금까지 결코 순탄하지 않은 나날이었지만 그 작은 에피소드는 계속 저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절망으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참다운 자신으로 성숙하는 커 가는 벼를 생각하며 새로운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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