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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藥에의 道
등록일 2003-03-28
조회 3,027

 

    Health Park

藥에의 道
 


한덕용 박사

 

약의 어원(語原)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약.이란 치료물질에 대한 명사의 근원은 밝혀져 있지가 않다. 다만 중국문자 .藥.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을 뿐이다. 원래 중국국문자는 표의문자(表意文字)의 근원을 갖고 있다. 따라서 藥이란 문자를 해체(解體)해보면 풀(草)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사람의 병고(病苦)를 풀어주어 낙(樂)을 준다는 뜻과 복합해서 만들어진 문자로 해석된다. 이는 약의 시초적인 기원과 그 효과를 내포하고 있어 약의 내력을 함께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 일본에서는 약을 .구스리.라고 부르고 있다. 국내 국문학자의 해석적 연구에 따르면 우리말 .굿.에서 유래했다고 말하고 있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기 전의 원시사회에서는 .굿.과 같은 무속적인 행사가 병을 물리치는 하나의 방책으로 쓰여져온 것을 감안하면 전혀 근거없는 추론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독일에서는 좀 개화된 말로 의약을 가리켜 Arzenei-mittel라고도 하는데 이는 병을 고치는 수단(手段) 또는 도구나 방법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관찰에 따르면 .약.의 정체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약은 이물(異物)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약은 풀뿌리(잎, 줄기, 종자, 전초)를 재료로 해서 발달하기 시작하였지만 18세기 이래 합성(合成)에 의해 수많은 약이 각각 수많은 세균이나 질병에 대해서 거의 만능적(萬能的) 기능으로 해서 인류에게 樂을 주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하지 못한 환상이었다. 약은 이물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지니고 있었다.

이물이란 우리 인체에 대해서 영양성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체의 정상대사에 기여하는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은 이중성(二重性)을 지니고 있고 우리들은 약이 지니고 있는 야누스의 두얼굴에서 선한 면만을 보고 있는 것이고 감춰진 무서운 얼굴에 대해서는 의식을 멀리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애써 선한 얼굴만을 보고 있는 것이 약이라는 것이다. 약은 언제 그 엄청난 독아(毒牙)로 인류를 할퀼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어두운 일면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난병(難病)의 하나인 암(癌)이 극복된다해도 또 새로운 병이 발생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그것이 인류의 질병의 역사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의약은 또 탄생하게 될 것이다. 약은 야누스의 두얼굴을 갖고 있지만 또한 불사신의 연면성과 더불어 존재의 당위성을 갖는다.

삶의 무한성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

삶의 본능은 종족의 유지와 삶의 무한성에 대한 욕망이었다. 그래서 옛부터 불로장수(不老長壽)를 염원하고 그 방책으로 불로초를 그리워했고 좋은 약을 구하기를 마지 않았었다.

때로는 종교적으로, 때로는 무속신앙으로 칠성당에 기도도 하고 조로아스타 신도들은 불을 모시는 것을 으뜸으로 했으며 멕시코 원주민은 메스칼린을 복용함으로써 환생을 꿈꾸고 신의 세계를 음미하기도 했다. 회교(回敎)에서는 印度大麻草를 그들의 신의 선물로 삼아온적이 있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물질적인 사고가 발달함에 따라 데리아카(萬能藥)의 등장을 오게하였고 이것은 급기야 중부유럽국가 또는 그 이전의 나라에서는 정치적 음모에 의한 독살(毒殺)과 깊은 상관성을 갖게 되어 세익스피어시대의 소설에서 보는 atropine이나 aconitine의 등장은 물론이고 듀마의 소설에서 나오는 해독약·효능만능약 등의 출현은 그런 시대의 시대적 배경에서 태어난 약물들이었고 이것은 직·간접적으로 생명의 보존(保存) 사상과 직결되어 있다.

한편 동양 삼국에서는 장수·불로(不老)의 약을 구하는 군왕(君王)들의 소망도 그러했지만 일반백성도 보명장수(保命長壽)의 꿈을 버리지 않고 길들어왔다. 그런 소망을 이루는 수단의 하나가 .藥依存思想.의 끈질긴 추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삶의 實體.는 이러한 소망에 부흥(復興)하기 에는 택도없는 거리에 있었다.

현대과학이 가르치는 바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은 DNA의 telome22 학설에 의하면 아무리 이상적인 조건에서 生育을 계속하여도 끝내는 자연의 삶이 자연사(自然死)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동물실험에 의해서도 입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DNA 나선구조를 바탕으로 한 생명의 신비를 풀어냈던 연구자의 한사람이었던 제임스 웟손(1953년 4월 네이쳐誌)은 50년이 넘은 지금 다른 9명의 연구자와 함께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의학혁명으로해서 사람은 150세까지 살 수 있다는 지견을 밝히고 있다. (2003년 2월 17일자 타임誌) 이들 석학들에 의해 밝혀진 인간수명은 150세까지 높아지기는 해서 장수(長壽)는 누릴 수도 있지만 불사(不死)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것도 養生을 잘 다듬고 保命을 손질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누구나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환경도 있고 또 DNA의 개인적 특수성도 있고 해서 균일(均一)하게 장수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신체의 운영(運營)은 기계론(機械論)을 전혀 지양(止揚)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것은 順命의 원리를 수용하고 保命의 手段을 잘 맞혀나가야만 그것도 가능할 수 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 양생(養生)의 철칙과 의약선택의 적기·적절한 섭취는 좋은 養命의 수단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인간의 소망을 그나마 충족시킬 유일한 方道가 될 수는 있다 할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될 수는 없다. 그것은 秦始王이나 漢武帝의 古事에서 알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藥의 存在와 그 의의를 여기서 찾아내야만 할 것으로 사료된다. .順命과 養生.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주어진 선택의 길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養生의 妙藥은?

그래서 사람들은 보약(補藥)을 들기를 선호한다.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은 한방에서 보약의 일품(逸品)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해석적인 연구에 따르면 10개 품목의 생약 중 5-6종이 유효성과 관련되고 나머지는 크게 이로운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약이 좋다해서 장복하는 경우 GPT와 GOT값이 병적으로 상승한다는 미발표의 통계가 있다. 좋은 약이라 해서 즐겨 장복(長服)하는 것은 간(肝)에 부담을 줄 수가 있다. 이것을 줄이기 위해서 유효성이 낮거나 없는 생약은 이참에 제외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봐야 할 한약(탕약)의 문제점이다.

약은 이(利)로운 것을 취하는 것이지만 다른면에 볼 때 불리(不利)하거나 해(害)로운 점도 함께 공유(共有)하는 아이러니와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이 상례이다.

생약이나 탕약이 생체에 불리한 점이 있고 합성약(合成藥)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욱 그러하다.

녹용의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녹용의 90%가 한국사람의 보약을 위해 소비되고 있는 실정에 있지만 실수요자의 건강향상이라던가 익수(益壽)기능에 기여한다는 통계도 없고 또 평균연령의 연장 등에 대해서는 보다 좋다는 인식이나 통계도 없어 용약(用藥)의 실용성(實用性)에 뚜렷한 제시(提示)가 아쉽다. 價格과 價値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용약풍토(用藥風土)는 인습(因習)과 전승(傳承)에 지나치게 매어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여기서 신앙에 가까운 꽉 막힌 수구성(守?性)을 엿볼 수가 있다. 전 국민이 약사요, 의사라는 항간에 퍼져있는 말은 시니컬하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의약고서(醫藥古書)에 대한 맹집과 고전수구(古典守?)의 부분적 병태는 이제 냉정한 비판과 시정이 뒤따라야 할 때가 됬다. 약이 좋다고 해서 함부러 과신하고 과용(過用)하는 것은 올바른 용약의 길이 아니다. 옛말에 공경함이 지나치면 예의가 아니라는 가르침이 있다. 여기 지나친 복약은 오히려 이롭지가 않다. 過藥不勝이라는 새로운 말을 독자여러분께서 용납하기를 바란다.


올바른 약의 길

약은 약학생물학에서 보면 물질적으로는 異物이란 특성을 지닌다. 이는 생체의 구성, 대사에 관여하는 生元素나 전생대사물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약은 二分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또 야누스의 兩面을 지니고 있어 지킬과 하이드 박사의 두 개의 가면을 갖는다.

1962년에 있었던 Thalidomide의 참화사건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운 의약으로 탈바꿈 할 것이라는 전망이 짙다. 임신부의 구토증에 아주 우수한 약이라던 것이 10개월 뒤에 물개발의 기형아를 양산(量産)했던 그 약이 새로운 약으로 탈바꿈하리라는 예보이고 보면 약은 분명히 이분법을 따르고 지킬과 하이드처럼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다. 그것이 약의 실태(實態)이다. 이러한 分極현상을 최소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은 약을 창조하는 사람과 이것을 취하는 사람의 지혜가 필요하다.

흔히들 體質에 맞게 약을 취해야 한다고들 한다. 체질을 말하는 과학적인 근거는 아직 극명(克明)치가 않다.

오늘날의 과학은 血液型에서 그 근원을 파악하려하고 있다. 특히 白血球 혈액형은 그 과학성을 배경으로 해서 생명의학에서 接近이 거세다. 어떤 약이 A라는 사람에겐 잘 듣고 어떤 사람에겐 안 듣거나 잘 안 듣는 사례는 적지 않다. 이것을 입증할 배경은 백혈구 혈액형에서 찾아낼 수가 있다. 페니실린 쇼크를 일으키는 사람이 드물게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이것도 백혈구 혈액형에서 증명될 수가 있다.

이제 體質에 알맞는 약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통에 매달린 고전적 體質論에서 벗어나 白血球型에 의한 유일하고 과학적인 길이 이 땅에서도 정립되어야 하겠다. 부작용, 약효의 選別에 새로운 길이 열려질 것이 확실하다.

오약(誤藥)과 남용은 때로 무서운 결과를 자초(自招)할 빈도가 크고 의사의 잘못된 처방도 약사의 감정이 없을 때 중대한 오약사건이 제기된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시 생체의 기능은 물론이고 體制의 유지를 위해서는 많은 물질이 공급되어야하고 대사가 조정되야 한다. 산다는 것은 老化의 과정이다. 그래서 겉으로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내부에는 反健康의 요소가 자라난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40% 내외는 未病(의 환자)에 걸려있다. 잠재성의 질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70세가 넘는 노령기의 사람들이 余命을 연장시키기 위해서는 다같이 약물이나 補助的 기능물질의 공급은 필수적이다. 비록 원치않는 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섭취하지 않으면 안되는 人間과 藥의 運命이 있다. 여기 과거의 망집을 버리고 취사선택의 마지막으로 주어진 인간의 知慧가 될 것이다.

Spring 2003 - 아름다운 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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