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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본드‘중독’이라는 불치를 부끄럽게 생각하며 - 안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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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83년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던 나보다 한살이 많은 친구가 본드를 봉지에 짜서 흡입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그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아 넘겼지만, 일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결국 나도 그 친구의 꾐에 넘어가 본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옳지 않은 것이란 걸 알면서도 막 사춘기적인 반항심이 생기던 터라 더 자주하게 되었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그 친구는 오히려 본드를 끊고 학교생활에 충실하려 노력한 반면, 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법을 알지 못했다. 중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후 상급학교의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본드흡입의 흔적을 감추었지만 그 정도가 심해져만 갔다. 처음엔 한 두 시간 정도 하던 것이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으로 늘어났고, 본드를 한 다음날은 지각을 한다거나, 출근을 하지 못했고, 또 횟수도 일주일에 한 두 번이던 것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늘어 갔다. 이로 인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도 나의 본드흡입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만 만나자며 헤어졌고, 친구들도 하나둘 떠나거나 몇몇 남아있던 친구들은 오히려 내가 멀리 했다. 본드를 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간섭 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다니던 공장에서도 내가 본드를 한다는 사실을 감추려 했지만 함께 모여서 공동작업을 해야 하는 특성상 입에서 풍기는 본드냄새를 들키고 난 후에는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본드에 대한 유혹이 너무나 강렬해서 쉽게 유혹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몸과 마음도 점차 황폐해져 갔으며, 왠지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살아보려 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잃은 후였다. 내 자신이 그렇게 힘들어 할 때 나를 재기할 수 없는 불구자로 만들고 있었던 본드에서 위안을 찾고자 했었으니….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꼬리가 길면 아무리 몰래 하는 일이라도 들통이 나기 마련인 지 결국 구속이 되면서 가족들 모두가 이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맞벌이로 직장에 다니셨기 때문에 나의 이러한 비행에 신경을 쓸 틈이 없으셨고, 그저 봉제공장에 다니며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있는 줄로만 알고 계셨다. 스무 살 되던 해에 난‘독물 및 극물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부모님이 경찰서 유치장 면회실에서 눈물을 흘리시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8개월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후에도 여전히 본드를 끊지 못하고 구속 수감되는 일을 되풀이 하는 사이에 어느새 이십대 중반에 이르러 있었다. 병무청에서 병역문제로 여러 차례 연락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구속된 처지에 있는지라 흐지부지 되어 버렸고, 나이가 차면 괜찮아질 거라 믿고 계셨던 부모님은 내가 습벽을 버리지 못하자 언제부턴가 돈을 주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나는 집안 신발장에 있던 구두약, 그것도 다 없어지면 치약을 봉지에 짜 넣어 냄새 맡고 대리만족하는 중독자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란 걸 왜 나는 몰랐었는지…. 그렇게 몽롱한 상태로 집을 나와 아버지의 아는 친구 분을 만나면 인사하면서 다가가 급히 돈이 필요하다고 속여 돈을 빌리거나, 아무 사람이나 붙들고 지갑을 잃어버려서 그러니 차비 좀 달라고 해서 돈을 모아 본드를 사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이처럼 내가 본드 중독자로 전락하면서 가족들에게도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본드를 처음 시작하고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짧았던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생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들을 썩은 과일처럼 취급받으며 중독자의 말로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고 어린 시절 꿈꾸었던 푸른 꿈들도 담 안에 갇혀 시들어 가고 있다. 마약에 대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이렇듯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한때는 이런 나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워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어렵게 친지들의 도움을 받 아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살아보려고도 했지만 어느 순간 유혹이 마수를 뻗쳐오면 아무리 몸부림 치고 생각을 바꿔보려 해도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오면‘이번 한번만 하고 말자’며 죄책감의 무게를 덜어내려 했다. 한번 마음의 벽이 무너지고 나면그 다음부터는 이전의 괴로웠던 모든 순간들이 즐거운 현실이 됐다. 가슴이 벅차고 염려하고 관심 가져 주었던 고마운 분들의 모습마저도 나를 어찌하지 못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본드를 구입하고 인적이 드문 근처의 산을 들어갔다. 그리곤…. 시간이 흐르고 그 깊은 환각의 늪에서 깨어났을 때는 온통 지친 몸과 어디에서 찢어졌는지 모르는 옷, 그리고 팔과 얼굴에난 작은 상처들, 그렇게 산속의 어둠 속에서 모두 잠든 밤을 혼자서 헤매고 다니게 된다. 한번 하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럽고 힘들지만 일단 시작하면 백번도 아쉬운 중독의 무서움.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아 보이는 이것에 나는 20년이 넘는 세월을 중독자의 모습으로 살아 왔다. 부모님도 이젠 내가 교도소에 있는 것이 더 안심이 된다고 하실 만큼 애물단지가 되었다. 옷에 떨어져 굳어 있는 본드처럼 내 인생의 곳곳에 스며들어 슬픈 기억의 악취들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상처를 다시 들추는 것처럼 몹시 쓰리고 아프다. 몇 번이나 포기했다가 다시 펜을 잡는 것은 이런 기회를 통해서 나마 본드 중독의 심각성을 다시금 깨닫고 이 깊은 늪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단약의 의지를 새삼 확인하기 위해서다.아울러 많은 청소년들에게 본드 중독의 심각성을 바로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워 유혹을 물리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나와 같은 전철을 밟는 청소년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이들로부터 마약을 완전히 퇴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여전히 완전한 회복의 길을 걷지 못하고 자유를 맡긴 채 살아가고 있는 재소자의 처지인지라 이번 수기를 통해 희망적인 회복의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글을 마치게 됨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한다. 다행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비참한 중독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회복되어 간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2006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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