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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두움의 세월과 아내의 사랑 - 한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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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사는 빛과 어두움이 있습니다.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충족되고 보장된 것이 민주주의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의 희망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집에서 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문화생활을 누리려면 그만한 재산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의식주 해결이나 자녀 양육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 늦게 잠자리에 들며 절치부심합니다. 조그만 희망이 보일 때 축배를 들고 낙심할 때도 술을 마십니다.
 
   술보다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할 때 마약류를 찾게 됩니다. 마약류를 찾는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부모덕에 흥청망청 돈을 물 쓰듯 해도 되는 부유층과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 않아 낙심하거나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상태의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물정을 잘 아는 내가 마취성 물질을 애용하고 그 달콤한 유혹을 쉽게 떨치지 못했던 것은 심히 부끄러운 짓이며 내 인생의 옥에 티입니다. 이제 부끄러운 과거사를 고백하려고 합니다.

접착제 장사를 하다.

   나는 원래 중장비를 운전하는 기사였습니다. 군대에서 기술을 배워 제대한 다음 공사현장을 전전하며 생활하였습니다. 결혼한 후에도 공사 현장으로만 다니게 되니 가족이 그립고 안정된 생활을 늘 원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려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습니다. 2년간 뜨거운 사막에서 일을 하여 내 집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집을 마련하고 나니 직업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직업을 찾던 중 마침 친척이 접착제 도매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트럭을 사고 영업기술도 대충 전수받아 접착제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서울은 물론 경기도 전역을 순회하면서 단골을 확보하며 장사를 하였습니다. 장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약간만 비싸도 거래를 하지 않았고, 싸게 팔면 이익이 없었습니다. 종일 누비고 다녔지만 단골 거래처가 없어서 매출실적이 부진하였습니다. 한 달이 되어 결산해 보니 중장비 기사 급료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자연히 힘이 빠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흡입 정보를 알다.

   자동차에서 라디오를 즐겨 들었습니다. 뉴스를 듣던 중 놀라운 사실을 접했습니다. 청소년들이 본드나 코크류에 중독되어 구속되었다는 뉴스였습니다. 이처럼 무서운 흉기를 취급한다는 것에 약간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같은 장사를 하는 선배들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철물점에서 파는 칼에 비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식칼을 요리하라고 팔지 흉기로 사용하라고 만들거나 팔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수긍하고 장사를 계속하였습니다. 그 후로 간간히 신문에서 비행청소년들의 기사를 접하곤 하였습니다.

환각흡입물질을 흡입하기 시작하다.

   건축을 하고 물건을 붙일 때 쓰이는 본드류와 방수에 쓰이는 코크류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을 계속 보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기심이 슬슬 발동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물건을 저장하는 차고에 창문을 닫고 한참을 머물러 보았습니다. 약간 머리가 띵하고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코크를 꺼내어 봉지에 쏟고 코를 들이 대었습니다.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기분이 야릇해지고 담대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잠자는 아내를 깨워 일장연설을 풀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귀부인으로 격상시켜준다며 희망을 주었습니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아내는 기분이 그다지 나빠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장사를 나갔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이고 무료한 나날이었습니다. 나는 창고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내가 창고에 오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창고에서 나오고 아내가 잠이 들면 어느 새 창고에 와 있었습니다. 나는 마치 길들여진 로봇처럼 코크를 쏟은 약봉지에 코끝을 대었습니다. 그 향은 내 코를 통하여 영혼을 마비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사 별게 아니고 다 부질 없다는 생각이 뇌에 가득히 주입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별거 아닌 세상사를 위하여 땀을 흘린 것도 바보 같은 세월이었다고 중얼거렸습니다.

흡입 사실 발각되다.

   근 일 년 가까이 이렇게 계속 하였습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 했던가! 내 행동을 수상히 여긴 아내가 미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닐봉지에 코를 박고 있는 나를 발견한 아내는 충격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냄새에 취한 것은 나인데 아내가 쓰러진 것입니다. 나에 대한 믿음이 깨졌기 때문일 것 입니다. 근 일 년 간 사랑한다고 위로하고 거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기쁨을 준 것이 환각성물질에 중독된 때문이었다는 것이 분하고 실망으로 변했던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다.

   아내는 밤새워 울다 다음날 이혼을 요구하였습니다. 아무런 위자료도 필요 없고 아이들마저 데리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처지가 되었습니다. 자존심도 버리고 아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다시는 환각성 물질로 자신을 마비시키지 않겠노라고 각서를 쓰고 신앙에 전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내 약속을 믿고 새로운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제 어둠에서 나와 진정한 빛에 머물고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생계는 자기가 맡을 테니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아내가 너무도 고마워 만학을 시작하였습니다. 낮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밤에는 집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가끔 코크 냄새가 맡고 싶었지만 아내의 간절한 소망을 배반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독의 유혹과 아내의 바람사이에서 씨름하며 5년이 흘렀습니다.

노력의 열매가 열리다.

   나의 결심과 노력의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일간지에 독서 왕이라는 칭호를 받고 대서특필되었습니다. 이어 공영방송 KBS TV[이것이 인생이다.]에 독서 왕으로 출연하였습니다. 이 방송이 나가자 전국에서 격려전화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불혹의 나이에 독학으로 독서 왕이 되었으니 모두가 감동한 탓입니다. 국방부에서는 홍보영화를 만들어 주고 산업 강사 협회에서는 연수를 시켜주고 강사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사회단체나 청소년을 상대로 강연을 나가면 꼭 아내의 이야기와 약물중독을 딛고 일어서 재기한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이 있습니다. 기쁠 때나 우울할 때 알코올이나 마약을 찾게 됩니다. 이러한 유혹을 과감히 물리칠 의지가 있고 옆에서 만류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행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둠에 헤매고 있을 때 나를 구해준 아내를 더욱 사랑할 것을 약속하며 부끄러운 이야기를 맺습니다.
 
 
<2007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2"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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