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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약으로부터의 탈출, 가족의 사랑과 격려 필요 -박 찬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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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을 받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꿈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의 꿈은 현실성이 없을 만큼 허황되고, 어떤 이의 꿈은 누가 들어도 소박하다 할 정도로 작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후자에 속한 소박한 꿈을 가진 부류였다.
2000년 내게는 가족들이 조금은 여유로운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갑작스런 사고로 아내와 사별하게 됨으로써 그 소박한 꿈이 깨졌다.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19년간 성실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어린 아이들을 누이에게 맡긴 채 술에만 의지하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방황의 시간이 이어지던 중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로부터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이 들어와 신중하게 생각 하지 않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그 때의 경솔한 판단이 내 생애 최대의 실수이자 막장인생으로의 시발점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시작은 중국에서 의류사업을 하는 친구로부터 일체의 경비를 모두 부담할테니 중국에 한 번 놀러오지 않겠냐는 연락이 오면서부터다. 구경도 할 겸, 사별의 아픔도 달랠 겸 별 부담 없이 중국에 갔다가 술자리에서 친구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무심결에 경험한 것이 마약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괌으로 작은 물건 하나만 운반해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큰돈을 준다는데, 이런 제안은 그 당시의 나를 정당화시키는 말일지는 몰라도 직장도 없고 어린 자식들이 딸린 나에게는 정말이지 뿌리칠 수 없는 커다란 유혹이었다. 거기에다 심신이 지쳐있던 내게 여행 삼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은 외국 구경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내게 더 없는 행운처럼 보였다.

마약의 수렁에 빠지다.
처음에는 돈만 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고사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뼈 속까지 마약에 젖어 끝없는 수렁에 빠져 들어갔다. 마약을 운반하며 번 돈은 ‘쉽게 번 돈은 쉽게 쓴다.’는 말처럼 마약구입과 유흥비 등으로 모두 탕진했고, 어린 자식들은 누이에게 방치하다시피 맡겨두고 삶을 도외시한 채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잠깐 동안의 환각 상태가 끝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현실에서의 허탈감과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이 나를 덮쳐 오기도 했지만 마약이 주는 쾌감은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가족들의 근심 어린 눈빛에서 느끼는 미안한 감정들을 상쇄시키고도 남았기에 그 어떤 죄의식도 느낄 수 없었으며 계속해서 마약을 찾게 되었다.
약을 끊으려고 노력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찾아오는 불안과 초조함 또 마약에 취해 있을 때의 흥분은 나도 모르게 다시 약을 찾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었다. 솔직히 약을 하고 느끼는 성적인 쾌감은 마약중독의 주된 원인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약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운반과 투약, 유흥의 반복되는 생활에 조금씩 지쳐가던 때,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면서 마약에 찌든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자 마지막으로 한탕하려고 했던 과욕으로 결국에는 이렇게 수인이 되어 행복과는 동 떨어진 교도소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말로를 주변사람들에게 익히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빨리 스스로의 힘으로 악의 구렁텅이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것을 뒤늦게 후회, 또 후회하고 있다.

일반 재소자 및 가족들의 격려와 사랑으로 마약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구속된 후 적지 않은 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들어와 별도로 지정된 곳에서 마약사범들과 함께 생활하며 마약의 씁쓸한 뒷맛을 맛보았다.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마약의 여운에 취해 있는 듯 투약경험 등을 나누며 또 다른 마약범죄를 모의하고, 배우고 있었다.
마약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되었고, 가정까지 파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마약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깊은 회의감에 젖은 나는 일반수들과 함께 수용되어 출역할 수 있도록 상담을 거쳐 건의한 결과, 일반 수용자가 있는 공장에 출역을 하게 되었지만 그곳에는 또 다른 시련이 있었다. 바로 마약사범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었다. 왜 똑같은 죄를 짓고도 이런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약사범들에 대한 깊은 회의감과 다시는 마약을 가까이 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시련을 견뎌 낼 수 있었고, 이런 나를 조금씩 이해해주고 마음을 열어준 동료들 덕분에 마약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고 몇 년이 자나면 담배 냄새가 역겹다고들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마약이 인간의 삶에 있어 얼마나 무익하고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비싼 대가를 치르고 깨달아가며 그 역겨움에 치를 떨고 있는 중이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갖기까지는 교도소 차원의 격리 수용과 지인들의 좋지 않은 말로를 보고 들은 바도 크지만, 역시 가장 큰 힘은 끝까지 맹목적인 사랑으로 내 곁은 지켜준 가족인 것 같다. 언젠가 아들이 보내온 연필로 쓴 삐뚤삐뚤한 글씨의 편지에 “아빠가 어디에 있든, 언제 오시든, 전 언제나 아빠를 기다리며 사랑해요.”라고 했을 땐, 가슴이 미어졌고, 동시에 부모 없이 자란 티가 나지 않게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밝고 곧게 잘 자라준 것 같아 신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가족들이 그런 사랑을 보여 준 건 아니었다. 거의 망가진 내 모습에 실망한 낯을 보였었지만, 자성과 반성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지금은 한없는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마약으로부터의 탈출은 나 스스로의 싸움이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끊임없는 사랑과 격려가 필요한 가족 모두의 싸움이기도 한 것 같다.
사회로 복귀할 즈음 또 다시 그 유혹의 손길이 찾아 올 수 있겠지만 변화하는 나를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과 아이들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겪어 온 지난 과오를 되새긴다면 그 유혹을 과감히 뿌리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함께 일했던 사람이 중국에서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그나마 사형을 받지 않은 게 다행이라나? 이것 역시 마약인의 최후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아닌가 싶다.
끝으로 이런 내가 있기까지 나를 믿고 기다려준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에게 용서를 빌며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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